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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escription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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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4년
우리는 그 시절을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으로 기억합니다
하지만 그 시절을 산 사람에겐
무더운 폭염의 날씨
전쟁통의 불안감과
피난 행렬을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
어수선한 시절..
주님의 사역을 위해 이 땅을 찾은 선교사분들..
이들 가족 중엔 무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
병으로 앓거나 희생된 이들이 많습니다
당시의 상황에 대해 적은 언더우드 부인 릴리어스(Lillias)의 기록입니다.
“전쟁 동안에는 모두 서울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.
몹시도 무더운 날 울안에만 갇혀 지내던 선교사들이 병에 걸렸다.
전킨(Junkin)목사 부부도 우리 집에서 여름을 보냈지만
아이 한명이 죽고 말았다.
이는 몇 주 동안의 더위로 희생된 사례였다.
언더우드와 우리 아들도 여름 내내 앓았다.
에비슨 가(家)의 두세명,
알렌 가의 두 명,
아펜젤러 가의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.
스크랜톤 가의 아이들은 열 때문에 쇠약해 졌다.
홀 의사는 열병에 걸려 죽었다.
빈턴 부부의 아기도 그해 여름에 죽었다.”
오늘은 빈턴 가족의 이야깁니다. |